착지! 착지! 착지해야지! 그가 선수들을 다그쳤다. 꽤나 마음을 졸였나보다. 앞에 출전한 선수가 저조한 성적을 냈으니 초조할 수 밖에. 그의 다그침 덕분인지, 선수는 다행히 제대로 착지했다. 하지만 그는 다음 경기에도 진정하지 못했다. 어이쿠! 에이, 저건 뭐야. 야, 뛰어! 등등의 추임새가 연달아 등장했다. 그래 스포츠는 그렇게 보는 거지. 그게 재미지. 그런데 지금 당신이 보는 건 안방에 널브러져서 보는 TV중계가 아니란 말야. 극장에서 보는 영화라고!!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오늘 내 뒤에서 <국가대표>를 너무 열심히 보던 한 아저씨의 이야기다. 경기장면에서 추임새 넣는 거는 이해할 수는 있는 데, 왜 선수들 등에 새긴 NAGANO를 보고 나가노, 나가노, 나가노 라고 중얼거리시는 지. 예전에 여행을 갔던 나가노가 그리우신 거였나, 나가노가 너무 가고 싶은 거였나. 시끄럽지는 않았는 데, 계속 신경이 곤두섰다. 차라리 시끄럽게 떠들었으면 관객들이 대거 항의했을 거다. 어디까지나 나 혼자만의 피해이니 가만있었다.
나가노를 연달아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10년전, 극장에서 내 뒤에 있던 아저씨가 떠올랐다. 1998년. 나는 단성사에서 이재용 감독의 <정사>를 보고 있었다. 자리를 찾을 때 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아저씨, 아줌마들로 바글바글했다. 난 19금 불륜드라마를 혼자 보러 온 20살짜리 남자였다. 극중에서 이정재가 허리를 숙여 운전석에 앉은 이미숙에게 짧게 키스했다. 두 사람의 첫 키스다. 그 순간 옆에 앉은 아줌마가 중얼거렸다. "어이구.. 어이구.." 진짜 압권은 이정재와 이미숙의 첫 정사씬이었다. 이정재가 몸살에 걸려 앓아누웠다. 이미숙이 찾아왔다. 이정재가 이미숙의 블라우스 단추를 풀으려 했다. 아무 천천히.. 단추 한 개가 풀렸다. 그 순간 뒤에 앉은 아저씨는 흥분했다.
"야, 임마!"
버럭하는 '야, 임마!'는 아니었다. 마치 동네 꼬마애를 겁주려는 듯한 톤이었다. 너무 웃겨서 그 다음부터는 뭘 봤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영화 속의 이미숙을 자신의 아내와 동일시 한걸까? 그는 유부녀를 사랑하는 총각이 아니라 극중 이미숙의 남편, 그러니까 송영창에게 이입한 듯 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서 '야, 임마!'가 울려퍼졌다. 이정재와 이미숙이 오락실에서 정사를 벌이는 장면에서는 심지어 기대하기까지 했다. 이번에는 어떤 추임새가 나올까. 처음 보다는 충격이 덜했는 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정말 짜증나는 게, 그 다음 정사씬이 나올때도 계속 '야, 임마'가 떠오르는 거다. 집에 오는 내내 '야, 임마!'가 잊혀지질 않았다. 그 이후로 다시는 단성사를 찾지 않았다.
영화상영 전 극장예절 광고는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릴 것, 촬영하지 말것, 앞 좌석을 발로 차지 말것을 이야기한다. 이 중에서 관객의 편의를 위한 건 앞좌석을 발로 차지 말라는 것 뿐이다. (물론 나머지도 하지 말아야 할 짓이다.) 여기에 쓸데없이 중얼거리지 말 것을 추가하면 어떨까, 싶었는 데 생각해보니 기준이 애매하다. 차라리 조용히 관람할 것이라고 해야하는 데, 그러면 코미디 영화 볼 때 터져나오는 웃음은 어떻게 해야하고 공포영화를 볼 때 비명은 어떻게 질러야 하나. 역시 쓸데없이 중얼거리지 말 것이란 예절인데, 이게 강조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신경 거슬린다고, 짜증난다고 이렇게 포스팅하는 게 전부일 뿐, 그 상황에서는 말한마디 하지도 못한다. 그냥 참을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아님, 집에서 혼자 영화를 보던가. 아직도 떠오른다. 나가노, 나가노, 나가노... 흑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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