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이다. 그런데도 친구는 노스페이스 점퍼를 입고 있었다. 이제 그만 입을때가 됐어. 순간 고등학생들도 봄을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60만원짜리 입는 애나 20만원짜리 입는 애나, 이제 그냥 교복만 입고 다녀도 되는 날씨가 다가오고 있다. 점퍼 가격으로 계급을 나누는 짓도 봄과 여름, 가을에는 못하지 않을까? 지금 한국에서 봄을 가장 간절히 기다리는 게 그애들 일 것 같았다.
그런데. 노스 페이스 점퍼로 계급을 나누는 거라면, 아예 점퍼 따위는 안 입는 경우는 어찌될까 궁금하다. 가장 상위계급이 60만원 노스페이스. 그 아래는 40만원. 또 그 아래는 20만원. 그리고 그 아래가 그외의 브랜드로 결정된다는 건, 일단 모든 아이들이 겨울이면 점퍼를 입어야 한다는 게 전제되었을 때 가능한 건 아닌지. 이때 한 아이가 난 점퍼 따위 입지 않겠다며 모직코트를 입고 등교한다면? 점퍼를 입은 99%는 코트를 입은 1%의 그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아예 왕따당하는 건가? 점퍼를 입도록 코트를 찢어버리는 건가? 주위에 고등학생이라도 있으면 물어볼텐데, 물어볼만한 애가 없다.
누가 어떻게 다쳤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오른쪽 발바닥이 가렵다. 왜 거기가 가려운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그의 말에서 느낀 촉각적인 고통 때문일 거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보면서도 오른쪽 발바닥이 가려운 경우가 많았다. 일단 그들이 살고 있는 공간의 추위가 고통스러웠다. <약속> <로제타> <아들> <더 차일드> <로나의 침묵>은 모두 겨울이거나, 이제 곧 겨울을 맞이할 것 같은 날씨를 배경으로 한다. 이들에게 추위는 극한의 상황을 더욱 극단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이유였다. 당장 먹고살 걱정이 큰 <로제타>의 소녀는 생리통이 와도 고작 헤어드라이기로 배를 따뜻하게 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약속>의 소년과 불법이민자 가족은 입김을 내면서 거리를 돌아다닌다. <더 차일드>의 남자는 추격을 피하는 과정에서 몸이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운 물 속으로 들어간다.
영화 속의 추위는 이들이 무언가를 만질 때, 더 추워보인다. <약속>의 소년이 차가울게 뻔한 자동차 배기통을 만질때, <로제타>의 소녀가 물 속에 넣어둔 어항에 매달아놓은 줄을 장갑도 안낀 손으로 당길 때, 그리고 그녀가 무겁고 차가운 가스통을 옮기려 들때, <아들>의 두 남자가 역시 맨손으로 목재를 나를 때, <로나의 침묵>의 로나가 난로를 때기 위해 나뭇가지를 주울 때, 그들의 손에 닿을 고통스러운 촉감이 상상되곤 했다. <더 차일드>에서 방금 물 속에서 나온 남자가 오토바이 바퀴에 낀 철사를 빼내려 들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에서 추위는 인물들이 현실에서 겪는 내적인 고통과 함께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