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 다이어리 받지 말았어야 했을 전화. 2011/02/15 20:53 by 품귀현상

기자로서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전화가 있다. 대부분 팩트를 잘못 기재한 경우다. 사람의 이름을, 회사의 이름을, 어떤 수치를... 본의 아니게 누군가의 이미지에 흠집을 내는 경우 걸려온 전화도 겸허하게 받고 사과할게 있으면 사과한다. 하지만 도저히 이 부류에 넣을 수 없는 전화도 있다.

사례1
<디워>와 <화려한 휴가>가 각축을 벌일 때였다. 어느 시점이 되자 <화려한 휴가>의 주말관객수가 <디워>의 주말관객수를 넘어섰다. 관계자들은 다음 주에도 ,<화려한 휴가>가 1위를 할 것이라고 예상했고, 예매율도 그렇게 나왔다. 그래서 그렇게 박스오피스 기사를 썼다. 얼마 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누군지를 밝히지 않는 어떤 아저씨였다. 요지는 이런 거였다. "우리 가게 옆에 극장이 있는 데, 거기는 <디워>가 다 매진이던데요? <화려한 휴가>는 매진된 관이 몇 개 없더란 말입니다. 그런데 <화려한 휴가>가 더 관객수가 많다는 겁니까?" 먼저 상황을 설명했다. 그 기사는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이 집계한 전국관객수를 토대로 쓴 거라고. 특정요일, 특정지역의 극장에는 특정영화가 인기를 끌지 모르겠으나, 전국으로 보면 그렇지 않은 것으로 수치가 나와있다고 말이다. 그 아저씨는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1시간 후 또 전화를 했다.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되네요. 아무리 그래도 이 동네가 시골도 아니고 서울에 있는 동네인데, 극장도 그냥 극장이 아니라 메가박스인데.. 그렇게 다르게 나오는 게 맞습니까?" 이때만해도 앞서 했던 말을 반복하는 정도로 응대했다. 나를 화나게 한 건 아저씨의 다음 말이었다.

"아니, 물론 선생님이 더 잘 아시겠죠. 저도 뭐 할일이 많으면 이런 전화를 하고 있겠어요? 제가 사실 이 동네에서 편의점을 합니다. 편의점에 있으면서 심심해서 컴퓨터를 하다보니까 이런 기사가 나오는 데,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전화를 건 거죠." 그래, 심심했구나. 젠장. 진짜 화가 났다. 화를 내지는 못하고, 그냥 끊어버렸다. 전화가 또 오지는 않았다. 아마도 다른 잡지사나 신문사에 또 전화를 걸었을 거다.

사례2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 대선 기간이었다. 연예인협회에서 지지선언을 했다. 당연히 화제가 됐다. 몇몇 연예인은 자신은 지지선언을 한 적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나도 몇몇 배우들과 통화를 시도했다. 매니저는 바꿔주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배우를 대신해 "지지선언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매니저들에 따르면 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는 식으로 기사를 썼다. 전화가 온 건 그로부터 한 달 후.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고 약 일주일 후였다. 그 배우의 매니저는 당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에이, 저희 형님은 다른 후보하고도 친하신대요. 다른 후보 진영에서 제의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지지선언을 하신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배우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아, 강기자님이세요? 수고가 많으십니다. 제가 잠시 해외에 나갈일이 있는 동안 이런 일이 벌어진 거 같은데요. 아무래도 저희 매니저가 저를 위한다고 한 말 같은데, 기사에 쓰신 내용은 사실과 다릅니다. 그 지지선언이 사실 제가 주도한 건데요. 기사가 이렇게 나가서 제가 좀 난감하게 됐습니다. 저희 매니저도 문책을 좀 당했고요."

이때쯤 되서 나는 그의 말을 받아적기 시작했다. 아. 네 그럼 제가 똑같은 분량의 정정기사를 내도록 하겠습니다. 자세한 경위를 말씀해주시겠어요? 내가 너무 적극적으로 나섰던 걸까? 배우의 태도가 달라졌다. "아, 네, 뭐... 그것도 좋은데요. 그런데 아무래도 지금 그런 기사가 나가면, 제가 선거결과에 따라 붙는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요?" 난 그럴 것 같았지만, 그럴일이 없을 거라고 했다. 그렇게 난감한 상황에 빠져계시다면 정정기사를 내보내는 게 나로서도 맞다고 말했다. "그러면 제가 좀 생각을 해보고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 그때 다시 말씀나누시죠. " 배우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다시 전화를 하지 않았다.

사례3. 
어떤 옛날 드라마에 대해 글을 썼다.  글의 내용은 대부분은 당시 그 드라마에 나온 여배우가 얼마나 예쁜 배우였는가에 대한 서술이었다. 빨리 연기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부탁도 있었다. 기사가 나가고 얼마 후, 어떤 남자가 전화를 했다. "000가 어떤 여자인지 아시고서 그런 글을 쓰신 겁니까?" 대충 짐작했다. 칼럼을 쓸 당시 찾아본 기사에는 남편과 재산분할 과정에서 다툼이 있었고, 이 때문에 소송을 겪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사건의 결론이 어떻든 나한테 중요했을 리가 없다. 어린 시절 좋아한 배우를 그리워하는 게 뭔 잘못이라고. 난 상대방에게 누구시냐고 물었다. 그는 "아실 것 없다"고 했다. 다짜고짜 그녀가 누군가에게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만 장황하게 설명했다. 귀찮아진 나는 "내가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할 이유는 없다"고, "그저 좋아한 배우에 대해 회고를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선생님. 그분이 그때 배우가 아니셨던 건 아니잖아요. 그의 마지막 말은 다음과 같았다. "네, 뭐 그렇죠. 그래도 이 부분에 대해서 아셔야할 것 같아서 전화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난 후, 그가 혹시 그녀의 남편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든 말든 여전히 내가 알바는 아니다.


어쨌든 기자에게 걸려오는 전화 중 무시해도 되는 전화의 특징은 대략 이렇다.

1. 그는 왠만해서는 자신이 누군지를 밝히지 않는다.
2. 팩트를 지적하기 보다는 자신의 의견이(혹은 믿음이) 기사의 내용과 다르다는 걸 강조한다.
3. 기자가 기사의 내용을 쓰게 된 경위를 밝히면, 그는 여전히 자신이 알고 있고, 믿고 있는 것만 더 큰 목소리로 말한다.

그래서 나름 생각하는 이런 전화의 대응방법은 또 대략 이렇다.

1. 상대의 정체를 물어본다. 혹은 다시 전화를 하겠다고 전화번호를 물어보자. 그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없다며 자신이 나중에 전화하겠다고 말할 거다. 
2. 굳이 기사를 쓰게 된 상황과 경위를 설명하지 말자. 그는 어차피 그런 이야기를 안듣는다.
3. 상대방의 말을 일일이 들어주려고 하지 말자. 그는 또 같은 말을 반복할 거다.
4. 상대의 교양없는 태도에 흥분하지 말자. 그는 아랑곳하지 않거나, 책임자를 바꾸라며 난리친다.

그런데 나는 오늘...

상대의 정체는 물어봤으나, 굳이 온갖 상황을 설명했고, 심지어 다시 취재를 해서 그의 의문점에 대해 다시 설명하려 했고, 상대방이 하는 말을 일이 들어주려다 "군대는 다녀 온거요?" "기자라면 이런 식으로 해서는 안되는 것 아니요?" "내가 편집장에게 편지라도 써야겠네." 라는 등의 말을 들었고, 괜히 흥분해서 목소리가 커졌다. 에이씨... 못 해먹겠네.


논픽션 다이어리 아무도 모른다. 알 수 도 없다. 2011/02/13 02:32 by 품귀현상

친구가 죽었다. 고3시절의 어느 날, 옆 반에서 들려온 소식이었다. 고2때 같은 반이었던 그와 그리 친한 건 아니었다. 등굣길에 만나면 같이 걸었고, 그때마다 종종 자신이 듣던 음악을 알려주던 애였다. 사인은 자살이었다.  자살동기는 알 수 없었다.

그와 함께 고2시절을 보냈던 친구들과 문상을 갔다. 장례식장의 규모를 보고 그의 가족들을 만났을 때, 가정형편을 짐작했다.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이 있었다. 여동생은 화상을 입은 얼굴이었다. 집안의 분위기가 그리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살림은 어려웠을 테고, 동생은 아팠고, 동생의 상처는 집안의 그늘이었을 거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자살의 이유라고 보지는 않았다. 그가 절망을 느낀 어떤 사건이 있었다면, 절망을 더 절망으로 느끼게 만든 주변 환경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자살의 동기는 의문이었다. 14년이 지난 지금도 의문이다. 하지만 당시 신문은 이렇게 적고 있다.

"컴퓨터가 뭐길래..."
"친구와 말 안 통한다" 고3 컴맹비관 자살

가정형편이 어려워 컴퓨터를 사지 못한 고등학생이 친구들이 컴퓨터 이야기만 해 말이 안 통한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2일 오전 6시경 서울 00구 00동 0모씨 집 현관에서 0씨의 외아들이 처마 끝에 전선으로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어머니 0모씨가 발견했다.
0군은 자신의 방에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 3분의 2가 컴퓨터 얘긴데 나는 하나도 모른다. 같은 반 친구들이 나를 완전한 촌놈으로 취급해 자살하기로 결심했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 동아일보 1996년 0월 00일


네이버 옛날신문에서 찾아보니 이런 기사다. 그때도 그랬지만, 나는 여전히 “같은 반 친구들이 나를 완전한 촌놈으로 취급해 자살하기로 결심했다”라는 이 문장이 의심스럽다. (누가 그를 촌놈으로 취급했는지도 알 수없다.) 분명히 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다듬은 티가 나는 문장이다. 다음은 또 다른 기사다. 

고3생 철없는 자살
친구들 "컴맹" 놀림에 목매

....0군은 일기장에 '학교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3분의 2가 컴퓨터 얘긴데 나는 하나도 모른다. 우리 반에서 나는 완전히 촌놈이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유서에는 또 "어린 우리를 놔두고 아빠와 엄마는 서울에서 일을 했다. 아빠 엄마 곁에서 컸으면 남들처럼 (컴퓨터에 대해) 아는 게 많고 공부도 잘했을 텐데" 라고 적혀 있었다. ... - 경향신문 1996년 0월 00일

이 기사에는 “자살하기로 결심했다”는 내용이 빠져있다. 동아일보 기사를 경향신문이 베낀 건 아니다. 두 기사는 같은 날 나온 신문에 수록됐다. 그런데 동아일보의 기사 속 그의 문장은 진짜 유언인 반면, 경향신문 속 그의 문장은 자살동기를 추정할 수 있는 어떤 메모에 가깝다. 여러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다. 당시 경찰서를 출입하던 동아일보 기자와 경향신문 기자가 각각 다른 브리핑을 받았거나, 혹은 사건내용을 알려준 경찰이 부모에게, 혹은 직접 사건을 담당한 다른 경찰에게 듣고는 대충 “이렇게 적혀있었다더라”라고 이야기했거나. 나는 “자살하기로 결심했다”는 저 문장이 기자의 손에서 쓰였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부주의가 아니라면, 일부러 그렇게 썼을 것이다. 어느 고등학생의 자살, 그리고 그의 노트에 적혀있던 ‘컴퓨터를 갖고 싶다’란 문장을 연결시키면, 그냥 자살사건이 아니라 컴퓨터를 둘러싼 사회적 병폐를 드러내는 사건이 된다. 정말 컴퓨터를 갖고 싶은데, 가질 수 없어 비관했고 그래서 자살을 결심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기자는 기사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좀 더 자극적인 가정을 했다. 가능성은 높다고 볼 수 있지만, 가능성이 사실을 만들어주는 건 아니다.

그의 죽음을 떠올린 건 최고은 작가의 죽음 때문이다. 그녀의 죽음을 전하는 기사들은 모두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하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하면서 살다가 결국 영양실조와 병으로 죽었다’는 식으로 정리하고 있다. 그래서 영화계의 구조적인 모순과 척박한 환경이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게 결론이다. 만약 그녀가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했거나, 아니면 참여한 프로젝트에서 성과를 냈거나, 데뷔를 준비하는 동안 영화계의 시스템에 의지할 수 있었다면 그녀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전부일까. 지금 시대에 한 사람이 자신의 자취방에서 싸늘하게 죽어간 이유가 단지 이 뿐일까. 최작가의 죽음을 처음 보도한 <한겨레>의 기사는 [“남는 밥 좀 주오” 글 남기고 무명 영화작가 쓸쓸한 죽음]이란 제목을 달고 있다. 그리고 사건에 얽힌 팩트들을 나열한 후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적고 있다.

“최씨가 일하던 영화계에 이런 사실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그의 지인들 사이에서는 최씨를 열악한 환경으로 내몬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탄식이 쏟아졌다. 극소수를 제외한 예비 영화인들은 생계조차 이어가기 힘든 대우를 참아내야 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최씨의 선배인 한 현역 영화감독은 “신인 작가들은 2000만원 정도인 계약금의 극히 일부만 받고 시나리오를 일단 넘긴 뒤 제작에 들어가야만 잔금을 받을 수 있다”며 “제작사가 좋은 시나리오를 묶어두기 위해, 기약도 없는 제작 일정까지 작가 같은 약자들에게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고 말했다.“

기사에 따르면 이 이야기들은 ‘지인’들의 이야기다. ‘지인’들도 “최씨를 열악한 환경으로 내몬 구조적인 문제”를 가정하고 있을 뿐이다. 기사는 또 ‘남는 밥과 김치를 달라“고 했다는 유언에 대해 ”그동안 너무 도움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라고 적고 있다. ’남는 밥과 김치‘란 문구가 그녀의 비루한 처지를 강조하고 있지만, <민중의 소리>가 입수한 실제 쪽지에는 “죄송해서 몇 번을 망설였는데... 쌀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없을까요... 번번이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적혀있다.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주세요”란 말은 아예 없다. 이 경우에도 14년 전의 그에 관한 기사들과 같은 가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자는 실제 쪽지를 보지 않았다. 경찰에게 들었다. 그 경찰은 사건을 담당했거나, 담당하지 않았을 텐데, 어느 쪽이라도 실제 쪽지를 보지 않았고, 봤다하더라도 역시 대충 “이렇게 적혀있었다더라”라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또한 이때도 기사의 가치를 높이는 가정으로 방향을 정했을 거란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느 여성 시나리오 작가의 빈사, 그리고 영화계의 현실이 합쳐져 영화계의 구조적인 모순을 상징하는 사건이 만들어진 셈이다.

나는 영화계가 억울하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만약 영화계가 그동안 스텝들의 처우를 잘 해주고 시나리오 작가를 우대해줬다면, 분명 이 기사는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녀가 그런 처지에 놓인 또 다른 이유를 찾았거나, 아니면 찾지 않고 그저 병이 사망원인이라고 보도했을 거다. 하지만 영화계의 현실은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변명도 할 수 없을 만큼 모순적이다. 또한 이 사건으로 영화계의 시스템에 대한 문제점이 드러나고 그래서 좋은 구조가 안착된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좋은 일이며, 지금이라도 그래야만 한다. 그러나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 이런 식으로 가설을 풀어내는 건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본다. 유가족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남는 밥과 김치”란 문구로 그의 삶을 더 비루하게 묘사하고, 정황상의 가정으로 그가 느꼈을 절망적인 상황을 단칼에 정리해버리는 게 과연 옳은 것인가. 그녀에게는 오로지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하는 것만이 꿈이었을까. 14년 전의 내 친구는 갖고 싶은 게 컴퓨터뿐이었을까?  아무도 모른다.


P.s
1. 14년 전 그의 단짝에게 들었던 이야기. 사실 그가 유언처럼 남긴 문장은 일기장에 적힌 게 아니었다. 그의 연습장이었고, 연습장 귀퉁이에 딱 한 문장이 적혀있었다. “컴퓨터가 갖고 싶다.” 아마도 저 기사 속 내용은 그가 평소 부모에게 했던 이야기들을 조합해낸 결과물로 보인다.

2. 그가 죽고 몇 달 후, 나와 친구들은 수능 모의고사를 치렀다. 1교시 언어영역. 듣기평가 시간. 성우들이 읽은 지문은 컴퓨터에 열광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대화였다. “최근 부모가 컴퓨터를 사주지 않아 자살한 어느 고등학생의 이야기처럼...” 이라고 여자성우가 운을 뗐다. 지문을 듣던 우리들은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시험을 계속 치렀다.  
 


<만추>의 현빈, 이 남자와 좀 닮았다. 2011/01/28 04:26 by 품귀현상

이 남자는 이만희 감독의 <휴일>에 나온 신성일이다. <만추>는 1966년도에, <휴일>은 1968년도에 제작됐다. <만추>는 볼 수 없는 영화이고, 시나리오만 남아있다. 이야기는 공원에서 시작한다. <휴일>은 어떤 남자가 보내는 일요일을 그리는 영화다. 공원과 일요일. 그냥 뭔가 나른해 보이는 느낌상 <휴일>의 몇몇 장면이 어느 정도 <만추>의 결을 상상할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싶었다. <휴일>에서도 극 중의 신성일과 전지연은 공원을 산책한다. 바람이 몰고오는 모래바람이 두 남녀를 계속 감싸안고 있다. 부산영화제에서 봤던 김태용 감독의 <만추>에는 비와 바람이 부는 시애틀의 풍경이 등장한다. 그리고 계절상 두 남자는 코트를 입고 있다. 바람을 막으려 옷깃을 여미는 손짓은 너무나 당연한 행동이지만, 언뜻 스친 이들의 흡사한 표정 때문인지 그마저도 놀라워 보였다. 그러고 보니 신성일은 이만희 감독의 <만추>에서도 남자주인공을 연기했다.난 이만희 감독의 다른 남자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현빈이라면 그 시대에도 분명 그의 남자들을 연기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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