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로서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전화가 있다. 대부분 팩트를 잘못 기재한 경우다. 사람의 이름을, 회사의 이름을, 어떤 수치를... 본의 아니게 누군가의 이미지에 흠집을 내는 경우 걸려온 전화도 겸허하게 받고 사과할게 있으면 사과한다. 하지만 도저히 이 부류에 넣을 수 없는 전화도 있다.
사례1
<디워>와 <화려한 휴가>가 각축을 벌일 때였다. 어느 시점이 되자 <화려한 휴가>의 주말관객수가 <디워>의 주말관객수를 넘어섰다. 관계자들은 다음 주에도 ,<화려한 휴가>가 1위를 할 것이라고 예상했고, 예매율도 그렇게 나왔다. 그래서 그렇게 박스오피스 기사를 썼다. 얼마 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누군지를 밝히지 않는 어떤 아저씨였다. 요지는 이런 거였다. "우리 가게 옆에 극장이 있는 데, 거기는 <디워>가 다 매진이던데요? <화려한 휴가>는 매진된 관이 몇 개 없더란 말입니다. 그런데 <화려한 휴가>가 더 관객수가 많다는 겁니까?" 먼저 상황을 설명했다. 그 기사는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이 집계한 전국관객수를 토대로 쓴 거라고. 특정요일, 특정지역의 극장에는 특정영화가 인기를 끌지 모르겠으나, 전국으로 보면 그렇지 않은 것으로 수치가 나와있다고 말이다. 그 아저씨는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1시간 후 또 전화를 했다.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되네요. 아무리 그래도 이 동네가 시골도 아니고 서울에 있는 동네인데, 극장도 그냥 극장이 아니라 메가박스인데.. 그렇게 다르게 나오는 게 맞습니까?" 이때만해도 앞서 했던 말을 반복하는 정도로 응대했다. 나를 화나게 한 건 아저씨의 다음 말이었다.
"아니, 물론 선생님이 더 잘 아시겠죠. 저도 뭐 할일이 많으면 이런 전화를 하고 있겠어요? 제가 사실 이 동네에서 편의점을 합니다. 편의점에 있으면서 심심해서 컴퓨터를 하다보니까 이런 기사가 나오는 데,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전화를 건 거죠." 그래, 심심했구나. 젠장. 진짜 화가 났다. 화를 내지는 못하고, 그냥 끊어버렸다. 전화가 또 오지는 않았다. 아마도 다른 잡지사나 신문사에 또 전화를 걸었을 거다.
사례2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 대선 기간이었다. 연예인협회에서 지지선언을 했다. 당연히 화제가 됐다. 몇몇 연예인은 자신은 지지선언을 한 적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나도 몇몇 배우들과 통화를 시도했다. 매니저는 바꿔주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배우를 대신해 "지지선언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매니저들에 따르면 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는 식으로 기사를 썼다. 전화가 온 건 그로부터 한 달 후.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고 약 일주일 후였다. 그 배우의 매니저는 당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에이, 저희 형님은 다른 후보하고도 친하신대요. 다른 후보 진영에서 제의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지지선언을 하신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배우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아, 강기자님이세요? 수고가 많으십니다. 제가 잠시 해외에 나갈일이 있는 동안 이런 일이 벌어진 거 같은데요. 아무래도 저희 매니저가 저를 위한다고 한 말 같은데, 기사에 쓰신 내용은 사실과 다릅니다. 그 지지선언이 사실 제가 주도한 건데요. 기사가 이렇게 나가서 제가 좀 난감하게 됐습니다. 저희 매니저도 문책을 좀 당했고요."
이때쯤 되서 나는 그의 말을 받아적기 시작했다. 아. 네 그럼 제가 똑같은 분량의 정정기사를 내도록 하겠습니다. 자세한 경위를 말씀해주시겠어요? 내가 너무 적극적으로 나섰던 걸까? 배우의 태도가 달라졌다. "아, 네, 뭐... 그것도 좋은데요. 그런데 아무래도 지금 그런 기사가 나가면, 제가 선거결과에 따라 붙는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요?" 난 그럴 것 같았지만, 그럴일이 없을 거라고 했다. 그렇게 난감한 상황에 빠져계시다면 정정기사를 내보내는 게 나로서도 맞다고 말했다. "그러면 제가 좀 생각을 해보고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 그때 다시 말씀나누시죠. " 배우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다시 전화를 하지 않았다.
사례3.
어떤 옛날 드라마에 대해 글을 썼다. 글의 내용은 대부분은 당시 그 드라마에 나온 여배우가 얼마나 예쁜 배우였는가에 대한 서술이었다. 빨리 연기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부탁도 있었다. 기사가 나가고 얼마 후, 어떤 남자가 전화를 했다. "000가 어떤 여자인지 아시고서 그런 글을 쓰신 겁니까?" 대충 짐작했다. 칼럼을 쓸 당시 찾아본 기사에는 남편과 재산분할 과정에서 다툼이 있었고, 이 때문에 소송을 겪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사건의 결론이 어떻든 나한테 중요했을 리가 없다. 어린 시절 좋아한 배우를 그리워하는 게 뭔 잘못이라고. 난 상대방에게 누구시냐고 물었다. 그는 "아실 것 없다"고 했다. 다짜고짜 그녀가 누군가에게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만 장황하게 설명했다. 귀찮아진 나는 "내가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할 이유는 없다"고, "그저 좋아한 배우에 대해 회고를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선생님. 그분이 그때 배우가 아니셨던 건 아니잖아요. 그의 마지막 말은 다음과 같았다. "네, 뭐 그렇죠. 그래도 이 부분에 대해서 아셔야할 것 같아서 전화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난 후, 그가 혹시 그녀의 남편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든 말든 여전히 내가 알바는 아니다.
어쨌든 기자에게 걸려오는 전화 중 무시해도 되는 전화의 특징은 대략 이렇다.
1. 그는 왠만해서는 자신이 누군지를 밝히지 않는다.
2. 팩트를 지적하기 보다는 자신의 의견이(혹은 믿음이) 기사의 내용과 다르다는 걸 강조한다.
3. 기자가 기사의 내용을 쓰게 된 경위를 밝히면, 그는 여전히 자신이 알고 있고, 믿고 있는 것만 더 큰 목소리로 말한다.
그래서 나름 생각하는 이런 전화의 대응방법은 또 대략 이렇다.
1. 상대의 정체를 물어본다. 혹은 다시 전화를 하겠다고 전화번호를 물어보자. 그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없다며 자신이 나중에 전화하겠다고 말할 거다.
2. 굳이 기사를 쓰게 된 상황과 경위를 설명하지 말자. 그는 어차피 그런 이야기를 안듣는다.
3. 상대방의 말을 일일이 들어주려고 하지 말자. 그는 또 같은 말을 반복할 거다.
4. 상대의 교양없는 태도에 흥분하지 말자. 그는 아랑곳하지 않거나, 책임자를 바꾸라며 난리친다.
그런데 나는 오늘...
상대의 정체는 물어봤으나, 굳이 온갖 상황을 설명했고, 심지어 다시 취재를 해서 그의 의문점에 대해 다시 설명하려 했고, 상대방이 하는 말을 일이 들어주려다 "군대는 다녀 온거요?" "기자라면 이런 식으로 해서는 안되는 것 아니요?" "내가 편집장에게 편지라도 써야겠네." 라는 등의 말을 들었고, 괜히 흥분해서 목소리가 커졌다. 에이씨... 못 해먹겠네.






